초등생 두 형제의 ''눈물의 설날''

by 인선호 posted Jan 27,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빠찾아 백리길

제일 따뜻해 보이는 옷을 몇겹 겹쳐 입고, 운동화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TV에서는 날씨가 영하 17도라는데 서울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은 아빠를 꼭 보고 싶다.

생계형 범죄로 서울 구로동 남부경찰서에 잡혀간 아버지를 찾아 ''백리길''을 걸어간 김민규(13·가명)와 동생 민식군(11·가명). 형제는 22일 설날 아침 경기도 안양 만안1동 집을 나섰다. 이웃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따뜻한 떡국을 먹고 있었지만 형제는 아침도 거른 채 유치장에서 떨고 있을 ''아빠''를 찾아나섰다.

그날 아침은 올겨울 들어 최고로 추운 날이었고 눈까지 내려 길은 미끄러웠지만 형제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북쪽으로 북쪽으로 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춥고 배고프지?" "괜찮아, 형." 형은 잘 따라와 주는 동생이 대견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버지가 갇혀 있을 남부경찰서가 보였다. 문을 빼꼼히 열고 두리번거리는 형제가 전중익 조사반장(41·경위)의 눈에 띄었다. 추위에 얼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전반장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자, 형 민규는 "아빠 면회하러 아침에 안양 집에서 걸어서 왔어요"라며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쯤. 안양 집에서 남부경찰서까지 무려 30㎞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온 것이다.

아버지 김모씨(59)는 설날을 며칠 앞두고 모 할인점 매장에서 아이들에게 입힐 옷가지를 훔친 혐의로 수감 중이었다. 그러나 21일 저녁 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영등포구치소로 넘어가는 바람에 형제는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두 어린이를 보다 못한 전반장이 뭐 좀 사먹고 차비나 하라고 4,000원을 건네줬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전반장은 자신이 다니는 만민교회 박재우 집사한테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했다. 박집사는 그날 저녁 아이들이 사는 연립주택을 찾아 나섰다.

무서워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애들을 설득해 집에 들어간 그는 깜짝 놀랐다. 쌀도 떨어진 데다 수도계량기가 동파돼 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마저 고장나 라면도 끓여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8년 전 김씨와 이혼했다고 한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형제는 김씨가 구속된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을 굶다시피 했다는 것. 전반장이 준 돈에서 차비 등으로 쓰고 남은 1,000원으로 새우깡을 사먹어 행복했다고 한다.

전반장은 "아버지가 생계형 범죄지만 예전에도 물건을 훔친 전력이 있어 몇개월 정도 실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기간에 형제가 꿋꿋하게 견뎌내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안양시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 민규는 올해 중학생이 되고 동생 민식이는 5학년에 올라간다.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