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에 무너진 ''33년 金의 왕국

by 인선호 posted Jan 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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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던 27일 서울지법에는 10명 정도의 건장한 청년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자칭 전 태권도 국가대표. 이들은 金씨가 법정에 들어가는 장면을 취재하려는 사진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金씨의 사법처리가 임박하면서 체육계가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됐다. 1971년부터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그의 오랜 아성이 무너진 뒤의 후폭풍을 감당해내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특히 그가 쥐고 있던 태권도계의 인맥 변화 과정에서의 진통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체육계는 보고 있다. ''포스트 김운용''을 맡을 뚜렷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그의 추락은 한국 체육계 전체의 ''망신''이다. 金씨는 소위 ''체육대통령''이라는 IOC 위원장 선거에 최초로 출마했던 한국인이다. 그는 지난 24일 IOC로부터 자격정지 결정을 받은 상태다. 한국 검찰에 의해 구속돼 실형이 확정된다면 IOC로부터 영구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사상 처음이다.

그는 98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의 ''뇌물 스캔들'' 등으로 이미 두번 IOC 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전쟁 때 통역장교를 지낸 金씨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61년 국방장관 보좌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4개국어(영어.프랑스어.일어.스페인어)에 능통한 어학실력을 인정받아 주미(駐美) 참사관 등을 지냈고, 68년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 비서관이 됐다. 그러면서 태권도협회를 맡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태권도계는 여러 관(館)으로 나뉘어 있던 상태였다. 金씨는 2년 뒤 이를 통합했고 73년엔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세워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위치를 굳혀 나갔다. 현재 WTF 회원국은 1백79개다.

그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도 공헌했다. 지난 30년간 ''태권도=김운용''이라는 공식이 있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金씨의 추락은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 하락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당장 IOC는 내년 2월 올림픽 종목의 입.퇴출 평가를 할 계획이다. 金씨의 지원이 없는 한 태권도는 우슈 등에 밀려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태권도계의 우려다.

세계 태권도계 내에서 한국의 입지도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WTF는 다음달 15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金씨의 후임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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