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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이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을 국군 기무사령부의 중령이 청와대와 선이 닿는다는 30대 보신탕집 여주인의 거짓말에 속아 농락당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일 기무사 장교로부터 진급 청탁 등을 조건으로 돈을 받은 권모씨(39·여)를 구속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결혼해 평범하게 살던 권씨는 지난 2001년 9월 충북지역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할 당시 손님관계로 알게 된 기무사 소속의 A중령에게 자신이 대통령 후원자인 P그룹 C회장의 수양딸이라고 속였다. 권씨는 대령 진급의 마지막 기회를 노리는 A중령에게 청와대에 힘을 써 승진시켜주겠다고 약속한 뒤 주식투자 등 명목으로 30여차례에 걸쳐 3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하지만 권씨가 대기업 회장의 수양딸로 행세하기 위해 동원한 수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우선 ‘kingXXXX’라는 아이디가 포함된 대기업 회장 C씨 명의의 가짜 e메일을 만들었다. e메일에는 대통령 이름이 수시로 등장하고 때로는 대령 진급과 막대한 재산 증여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은근히 A중령을 협박하는 내용의 글들이 그럴 듯하게 올랐다.

A중령은 권씨가 인터넷 PC방에서 C회장 명의로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이를 보여주며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때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았다. 권씨는 직접 주문한 순금열쇠에 무궁화와 태극 문양 등을 넣어 마치 청와대 하사품인 것처럼 속이기도 했다. 기무사 장교들이 자신의 보신탕집에서 주고받는 대화내용을 기억해두거나 군과 권력층 동향에 대해 열심히 알아뒀다 적절한 시점에 써먹는 능숙함도 발휘했다.

권씨는 돈만 챙기는데 그치지 않고 비선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속여 A중령으로부터 건네받은 군내 동향 보고 문건을 모 잡지사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때쯤 A중령이 기무사 내부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발각돼 징계를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해지자 청와대 여성비서관을 사칭해 송영근(중장) 기무사령관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압력성 전화를 거는 대담함도 과시했다.

송사령관이 권씨의 전화를 받고도 선처 부탁을 수용하지 않아 급기야 군복을 벗게 될 지경에 놓이자 A중령은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청와대에 진정을 내 마침내 사기극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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