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왕비 안전 지키는 22세 태극낭자

by 인선호 posted Oct 08,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계 정상들이 모인 행사장에서 갑자기 테러범이 나타나 이슬람 왕비에게 달려든다. 1초도 되지 않아 검은 머릿결을 가진 여성 보디가드가 허공을 가르며 나타나 테러범을 완전 제압한다.

이달 중순 요르단으로 떠나는 한선희 (韓先希·22)씨를 보면 떠오르는 상상 속의 한 장면이다. 한씨는 최근 요르단 왕실 경호업체로 선정된 국내 민간 경호업체 ㈜NKTS 소속의 한 사람으로 다른 여자 요원 1명과 함께 압둘라 요르단 국왕의 부인 라니아 왕비의 경호를 맡게 됐다. 요르단 왕실 경호원으로 선발된 정예요원은 한씨를 포함, 모두 5명이다.

요르단 파견이 결정된 후 한씨의 개인 시간은 없어졌다. 무술과 실전 연습 틈틈이 1시간여씩 팀원들과 미국인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하루에 5번 정도 예배를 본다’ 등의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다 보면 하루해가 넘어가 있다.

한씨는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에서 여성이 경호원으로 나서게 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들었다”면서 “한국 여성 경호원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인 유단자에 대테러부대인 특전사 707부대 출신이다. 그렇다고 군인 집안 출신도 아니고 “천상 여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언니와 여동생을 둔 평범한 딸부잣집의 둘째딸이다. 그런 그가 특전사에 가기로 결심한 건 초등학교 때 휴가 나온 사촌 오빠의 군복 입은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란다.

“검은 베레모를 쓴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어요. 그 자리에서 ‘나도 저기 가겠다’고 결심했죠.”

한씨는 “중·고등학교 내내 ‘특전사를 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진짜로 군대를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는 덤덤하게 받아들이셨다”며 웃었다.

한씨는 2001년 말 하사로 제대한 후 경호원으로 일하는 여군 선배의 권유로 ‘보디가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매일 밤 자정 무렵 퇴근해 집에 돌아가면 바로 곯아떨어져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한씨는 “어제 남자친구가 연습실로 찾아와 잠시 본 게 거의 한 달 만의 만남이었다”고 웃었다.

그가 남자친구 이야기나 TV 드라마, 혹은 만화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스물두 살 아가씨인데, 경호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진다.

그는 아직까지 여성 경호원이 생소하다보니 여성 의뢰인들이 찾아와도 ‘남자가 더 듬직하다’고 남성 경호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여성 경호원은 심리적으로 의뢰인들을 더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요. 또 스튜어디스나 식당 종업원 등으로 변장해서 경호하는 데도 더 유리하고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경호원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는 “경호업무 못지않게 한국의 이미지를 위해 가장 완벽한 서비스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위험도 많고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씨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죠.”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