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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 울어버린 삼척 주민

비가 퍼붓는 19일 오후 2시30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마을수퍼.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평남(45)씨와 동네 주민들 4명은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멍한 시선으로 불과 10m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붓는 장대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말이 없었다.

기자가 다가가 앉아 말을 붙이자 이씨는 “태풍 ‘매미’ 때 집의 뼈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물에 쓸려 갔다”며 “이제 비만 보면 머리가 아파져 집 주변에 쌓인 흙을 퍼내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옆 자리에 있던 김재은(53)씨는 “지난해 수해가 난 지역에서 복구 인부로 일해 올여름 동안 170만원을 벌어 아이들 등록금이라도 하려고 장롱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것마저 떠내려 갔다”고 말했다. 말하다 감정에 사무쳐 김씨는 “이놈의 비, 이놈의 비”라며 울먹거리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막걸리 두 사발에도 벌써 취한 듯했다.

도계읍 고사리는 지난 12~13일 태풍 ‘매미’가 몰고 온 비로 마을 전체 84가구 중 73채가 물에 잠겼다. 한밤중 갑자기 물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옷가지 하나 제대로 챙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마을을 덮쳤던 황토흙이 지난 며칠간 잠깐 거죽이 말랐다가 다시 내리는 비에 녹아내리면서 진창으로 변했다. 깊은 곳은 무릎 아래까지 빠졌다. 지난 폭우에 막힌 하수도가 뚫리지 않아 내린 비는 그대로 마을 안에 고이고 있었다.

또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우산도 없이 그대로 비를 맞고 있는 김선자(68) 할머니였다. 그는 “아들 하나 없어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어쩌자고 비가 또 내리냐”며 허공에 대고 울먹였다.

빗속에서도 굴착기와 덤프트럭은 뻘과 흙더미를 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6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온전한 집 처마 밑에 제비처럼 늘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집 앞에 빨래들이 걸려 있었지만 비가 오는데도 걷는 사람이 없었다. 한 할머니는 시큰둥하게 “걷어봐야 어디다 둘기요? 몸뚱아리 하나 둘 데 없는디”라고 말했다.

이상헌(16·소달중 2년)군은 찢어진 우산으로 겨우 비를 피하며 굴착기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군은 “개천 둑이 터지자 쏟아져 나온 물이 마치 우리 집을 지름길로 이용하듯이 휩쓸고 빠져 나갔다”며 “가방도 책도 옷도 없어 지금까지 학교에도 못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집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에도 비가 오네요. 이 비는 얼마나 내릴 거래요?…내년에는 매미가 보이면 다 잡아죽일 거예요.”

오전 9시쯤부터 마을 복구를 돕던 ‘시흥시자원봉사자협의회’ 소속 주부 60여명은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며 오후 3시쯤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정미선(43)씨는 “오전 내내 동네 주민들의 이불들을 모아 빨래를 해놨더니 이렇게 비가 내린다”며 “널어놓을 곳을 찾다 마을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다리 아래에 겨우 널어놨는데 비가 계속오면 물이 불어 떠내려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구작업에 나설 계획이었던 인근 군부대도 오던 중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자 “일을 해봐야 효율도 없고, 소용도 없겠다”며 다시 돌아갔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하면서 굴착기와 덤프트럭만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일 뿐 맥 풀린 주민들은 그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고사리의 임춘빈(任春彬) 이장은 “13일부터 하루에 10t 트럭 10대 분량의 흙을 실어내도 동네가 아직 이 모양”이라며 “오늘도 잠을 자기는 틀렸다”고 말했다. 하늘이 야속할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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