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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7일 오후 서울 잠실의 한 상가건물 지하 2층에서 방음재 부착공사를 하던 부자(父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친구가 운영하는 건축설비사에서 하루하루 일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던 신해균(47)씨는 남들이 다 쉬는 공휴일인 이날에도 연장을 집어들었고, 아들 동현(17·M산업과학고2)군은 이런 아버지가 안쓰러워 책을 놓고 따라나섰다. 그런 부자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본드냄새가 자욱한 지하실 공사 현장에서 숨져 있었던 것이다.


신씨의 가정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환기장치 설비회사를 운영할 때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IMF는 여느 가장에게 그러했듯, 신씨에게도 삶을 신산(辛酸)한 투쟁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98년 회사가 부도나 집과 공장을 잃은 신씨 가족은 지하 단칸방으로 집을 옮겼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와 아들을 한 방에 재워야 하는 상황은 가장인 신씨에게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신씨는 공사판의 막일부터 동대문의 노점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신씨가 일을 마치고 잠들기 전 침대 밑에 꼬깃꼬깃 모은 돈이 3000만원. “자식들이 커가는데 한 방에 재울 수 없다”며 신씨는 이 종자돈에 9000만원을 대출 받아 올 초 빌라로 집부터 옮겼다. 이즈음 신씨에게 친구가 운영하는 설비사에서 소음방지공사 하도급 일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고됐지만 대출금 이자라도 벌자고 음식점 허드렛일과 화장품 가판대 판매원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인을 보면서 재기 의지를 다시 다졌다.


180㎝의 건장한 체격으로 손재주가 좋던 동현군은 휴일이면 늘 아버지를 따라나서 아버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본드를 칠하며 훌륭한 ‘조수’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동현군은 이날도 “아버지를 돕겠다”며 따라나섰다.


공사금액 60만원에 남는 이익은 10만원, 이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날 아침 8시에 집을 나선 부자는 현장에 도착한 지 불과 2시간 만에 숨졌다. 동현군은 발견 당시 온몸이 본드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본드냄새가 건물 밖까지 흘러나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는 지하 2층에는 가정용 선풍기 한 대만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지 않아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가 공업용 본드에서 나온 유독가스에 취해 정신을 잃어 숨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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