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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9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 KBS 2TV가 프로그램 개편뒤 신설한 프로그램인 ‘생방송 시민 프로젝트 나와주세요!’의 방송을 2시간여 앞두고 이 골목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나와주세요’는 첫 방송으로 ‘추징금 미납자, 전두환씨를 불러내라’를 기획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 앞에 중계차를 보내 전 전 대통령의 TV출연을 요구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기로 한 것이다.


< 담당 PD "출연할 가능성은 절반">

전경 30여명이 전 전 대통령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40여m 앞에서부터 굳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오후 9시30분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방송 제작진들은 “비가 내리네”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장 담당을 맡은 이영준(38) PD는 “지난달초 팀 회의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공개적 망신주기’나 ‘TV 재판’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민원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 책임자에게 해결책을 알아보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이라며, “책임자로 나설 만한 분이 전두환 전 대통령 밖에 없기 때문에 부득불 답변을 해주시기 바라는 차원에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제작진은 지난달 25일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찾아가 정연주 KBS 사장 명의의 프로그램 출연 요청서를 전달했다. 이 때문에 이 PD는 “전 전 대통령이 스튜디오에 나올지, 현장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 확률은 모두 같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이 방송에 출연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 보느냐’고 묻자 이 PD는 “글쎄요. 90%였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 PD는 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한 12년차 방송인.


< 전 전 대통령 경호진과 방송사 ‘논쟁’ >

오후9시50분이 되자 빗방울은 굵어졌고 전경들은 우비를 입기 시작했다. 단독 주택가이기 때문인지 이따금씩 골목길을 지나가는 차량 외에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방송을 앞둔 제작진 20여명 외 거리는 조용하기만 했다. 오후 9시57분쯤 전 전 대통령의 경호팀과 방송 제작진 사이에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경호팀 관계자는 제작진에게 “방송용 조명을 전 전 대통령의 집에 비출 경우 사생활 침해와 주거침입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 PD는 “무례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답변을 듣고 싶은 질문이 3~4가지 있다” “인터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며,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PD는 “전 전 대통령이 방송에 출연했으면 하는 제작진의 의사를 전해달라”고 경호팀에 요청하기도 했으며, 경호팀은 “비서진에게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 불 꺼진 전 전 대통령의 집 >

오후 10시가 되자 종합일간지 야근 기자와 방송 담당 기자가 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경비를 맡은 경찰의 양해를 구하고 전 전 대통령의 집 앞까지 가보았다. ‘연궁솔길 5-3’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전씨의 자택은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전씨의 집 맞은편 골목에는 일반 주택을 개량한 초소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초소 근무자는 “주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만 말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집에 있다” >

오후 10시15분 방송시간이 가까워지자 제작진은 사전 점검을 시작했다. 현장 생중계를 맡은 홍소연(30) 아나운서는 방송 테스트에서 “전 전 대통령이 집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카메라가 확인한 바로는 계시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홍 아나운서는 전경들에게 “전 전 대통령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우비 차림의 전경들은 굳은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이 즈음 동네 주민들도 1~2명씩 방송 현장 근처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對 “불법적으로 모은 돈” >

연희동에 6년째 살고 있는 주민 이진수(54)씨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 문제와 생방송에 대한 의견을 묻자 “글쎄요, 뭐라고 답변할 말이 없네”라며 웃기만 했다. 주민 맹용재(61)씨는 “한국을 짊어지고 갈 젊은 기자들이 일국의 대통령 한 분을 언론에 그런 식으로 공개해야 되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맹씨는 “전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며 “KBS의 방송 기획은 잘못됐으며, 나는 전두환씨가 나오면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연희동에 3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신모(67)씨는 “법을 안지키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은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좋다”며 “국민 중에 (전씨가) 30만원 밖에 없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주민 김모(70)씨도 “연희동에서 47년간 살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전씨가 불법적으로 모은 돈이란 걸 안다”며 “국민들은 양심껏 있는 걸 다 털어놓고 사죄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10시40분이 되자 방송용 조명등 6개가 동시에 켜졌다. 8m 높이까지 올라가는 크레인을 통해 방송용 카메라도 전 전 대통령의 집을 비추기 시작했다. 방송 제작진은 “클로즈업할 경우 불 꺼진 전 전 대통령의 집이 카메라에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관계자와 취재진, 주민들까지 모두 80여명이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다.


< 한편에선 ‘1인시위’, 다른편에선 ‘분통’ >

같은 시각 민주노동당 서대문갑 지구당 소속의 박이경환(22·대학생)씨가 피켓을 걸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에는 ‘추징금 미납자 전두환을 불러내자’ ‘전두환은 추징금 납부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문구가 써있었다. 박씨는 “전씨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의미에서 과거 권력으로 얻었던 은닉 재산을 하루 빨리 공개하고 미납한 추징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당은 지난 5월12일부터 20여일간 전 전 대통령의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정현정(26) 지구당위원장은 “전씨가 20만원 밖에 안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친 것과 같다”이라며 “이 같은 공중파 방송의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골목 반대편에서는 주민 2~3명이 모여 “밤 11시가 넘었는데 뭐하는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5년째 연희동에 살고 있는 주민 문병순(50)씨는 “이 방송은 첫 회부터 쇼 오락프로그램으로 변질한 것 아니냐”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1인 시위가, 다른 한편에선 주민들의 분통이 터진 셈이었다.


< 서대문경찰서 "생긴 이래 가장 바쁘다">

골목 위쪽에는 서대문경찰서 정보계 형사들이 “반장님, 이제 곧 방송 들어갑니다”라며 경찰서로 바쁘게 전화 보고를 하고 있었다. 이 보고는 서울지방경찰청을 거쳐 경찰청까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한 형사는 “경찰서 생긴 이래 요즘처럼 바쁜 날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대문경찰서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비자금으로 지목된 150억원을 돈 세탁한 의혹을 사고 있는 김영완(50·해외체류)씨 집을 작년 3월 털었던 ‘떼강도 사건’을 수사했었다. 그러나 당시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호텔에서 피의자들과 술자리를 갖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으로 나타나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기자가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가장 바쁜 것이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매스컴에 매일 (경찰서가) 나와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오후11시5분 방송이 시작되자 제작진들은 카메라를 점검하고 아나운서 위치를 확인하는 등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 생방송 도중 ‘방송 사고’ 터질 뻔 >

오후 11시27분쯤 골목으로 들어선 승용차 1대가 경적음을 울리자 제작진들은 기자들에게 “길을 조금 비켜달라”고 말했다. 방송 관계자는 “이제부터 5분간 차량 통행을 통제하라”고 말했다. 오후11시40분 생방송 현장 중계가 시작됐다. 홍소연 아나운서는 방송이 시작되자 “전두환씨 집 앞에 와있지만 전경들이 막고 있어서 볼 수가 없다”며 “평소에는 이렇게 많은 경찰들을 배치해놓고 있지 않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뒤 홍 아나운서는 경비를 맡은 전경들에게 “전두환씨가 지금 집안에 계신가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할 수는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전경들은 굳은 표정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 때 갑자기 한 주민이 아나운서를 향해 “아가씨 몸매 좋다”며 큰 소리를 쳤다. 제작진들은 손짓으로 그 주민을 가리키며 “조용히 해주세요”라며 제지했다. 방송에는 목소리가 잡히지 않았으나, 자칫 ‘방송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오후11시46분쯤에는 골목으로 들어오려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다시 들려 제작진들이 긴장하기도 했다. 이 경적 소리가 그대로 방송에 잡히고 현장이 소란스러워지자 홍 아나운서가 “주위가 소란스럽다”고 말하는 도중 중계차의 생방송이 끊기기도 했다. 한 시민은 “아까부터 똑같은 차가 계속 이 길을 지나가는 걸 봤다”면서 “일부러 방해하려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도중 생방송이 계속된 탓인지 방송 카메라 1대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 뒤늦게 나타난 코미디언들 >

최근 ‘구봉숙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케이블TV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미디언 김구라·황봉알·노숙자 등 3명은 방송이 끝날 즈음인 자정쯤 별도의 방송을 위해 녹화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첫 방송에 비가 오면 프로가 잘 나간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볼 때 (전씨가) 100% 안 나오겠지만 내기를 한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는 쪽에 걸고 싶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시간에 왁스로 머리를 광낼 시간이라 나올 수가 없다”는 등의 너스레를 떨었다.

밤 12시10분쯤 크레인에 매달려있는 카메라가 전 전 대통령의 집을 멀리서 비추며 방송을 끝내자, 취재진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 주민은 “얼굴이라도 보려고 나왔는데 확실한 말을 한마디도 못듣고 그냥 가니까 섭섭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장 진행을 맡았던 홍 아나운서는 “실패를 예상 못한건 아니지만 속상하고 안타깝다”며 “오늘은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이런 시도를 한다면 언젠가는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전 전 대통령의 집에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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