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라질 이민사' 편찬 주역 박동수씨

by 허승현 posted Nov 10,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브라질 이민 1세대로 현지 한인사회에서 `맏형'으로 불리는 박동수(69)씨는 `브라질 한인이민 50년사'를 손에 들고 감개무량한 듯 눈을 감았다.

이민사 발간을 위한 비용 조달은 물론 자료 조사에 이르기까지 동분서주하며 꼬박 5년간 조바심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민사 발간을 위한 박씨의 고행은 지난 2006년부터 한인회장 당선과 동시에 시작됐다. 박씨는 10일 인터뷰에서 "한인사회에서 이민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면서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내가 총대를 메야겠다고 생각해 한인회장 당선 직후 이민사 편찬위원회를 꾸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편찬위원 3명을 뽑고 일을 시작했지만 유일한 자금줄인 한인회비가 바닥이 나면서 편찬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봉착했다"며 "결국 가족 몰래 사재 2천만원을 털어 급한 불을 끄고, 후원금을 모금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외교통상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브라질 소사이어티와 LG전자 현지법인 등이 자금 후원에 나서고 한인사회도 박씨를 다시 한인회장으로 선출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집필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고,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등 주변국으로 퍼져 나간 브라질 이민자들을 찾아가 증언을 채록하느라 편찬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결국 박씨는 개인 사업을 잠시 접고 편찬 작업에 매달려 5년만에 85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민사를 완간, 9일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민사에는 "브라질 최초의 이민자는 1918년 배를 타고 허가 없이 현지에 도착한 박학기씨이며, 이후 1926년 이종창, 장승호, 김수조씨, 1931년 김영두씨 등 일가족 6명, 1956년 반공포로 50명 등이 공식 이민 전의 기록이며, 1962년 고광순(94)씨 등 15명이 한백문화사절단으로 갔다가 정착하고, 이어 1963년 농업이민자 103명이 산투스 항에 도착한 시점부터가 이민사의 첫 페이지"라고 소개돼 있다.

또 사진 220장이 실린 이민사에는 1~5차에 걸친 농업 및 기술이민, 반공포로 도착과 활동상황, 농장입주현황과 영농, 지방 이민사, 도시 상파울루에서의 생활, 한인 교육·문화사, 종교·단체, 교포사회의 초기와 현재 등이 실려 있다.

박씨는 "50년 뒤 우리의 후손들이 100년사를 펴낼 때 기초자료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선린상고 시절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박씨는 한일은행과 고려대, 한국전력 등에서도 투수로 활약했고, 1971년 전기기사로 브라질에 취업이민했다. 현재 원단사업을 하는 그는 브라질 한인야구협회를 창설해 청소년과 성인들을 직접 지도했고, 브라질야구협회 경기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