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오는 31일 2차 대선투표 실시

by 인선호 posted Oct 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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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최종 승부는 오는 31일 결선투표로 미뤄졌다.

결선투표는 1차 투표에서 1~2위를 차지한 집권 노동자당(PT)의 딜마 호우세피(62.여) 후보와 제1 야당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68) 후보 간의 대결로 펼쳐지게 됐다.

다음은 두 후보의 프로필.

◇딜마 호우세피 = 호우세피 후보는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줘 '브라질의 대처'로 불린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최근 호우세피의 대선 승리를 예상하면서 "게릴라 여전사였던 호우세피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여성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2억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브라질이 중국에 버금가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엄청난 자원부국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호우세피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넘어서는 여성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호우세피는 그러나 대선 유세 과정에서 그동안 쌓아온 '강한 여성' 대신 친(親)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노력도 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연상시키는 덥수룩한 수염을 짧게 다듬고 작업복 대신 고급 정장을 입으며 과격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반면 호우세피는 머리 스타일부터 복장,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유권자들에게 다가섰다. 그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닌 '보살피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했고, 이런 전략은 호우세피를 '브라질의 어머니'로 각인시키며 표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호우세피는 1947년 12월 14일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주도(州都)인 벨로 오리존테에서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10년 전 이혼한 뒤 외동딸과 함께 지내왔다.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 시절 반(反) 정부 무장투쟁 조직에서 활동했고, 1970년 군사정권 당국에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77년 브라질 최남부 리우 그란데 도 술 주의 주도인 포르토 알레그레 시 소재 연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상파울주 주 소재 캄피나스 대학(Unicamp)에서 경제통화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1986년부터 2002년까지 포르토 알레그레 시정부와 리우 그란데 도 술 주정부에서 재무국장과 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01년 PT에 입당하면서 룰라와 인연을 맺은 호우세피는 2003년 1월 룰라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연방정부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이어 2005년 6월에는 우리나라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수석장관에 기용돼 5년 가까이 재직하다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 3월 31일 사임했다.

에너지 장관과 수석장관을 거치면서 브라질 정부의 주요 개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등 업무 추진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이 때부터 룰라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완치된 뒤 룰라 대통령과 함께 전국을 누비면서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렸으며, 지난 2월 PT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공식 추대됐다.

호우세피는 이번 대선 이전까지 선거 출마 경험은 물론 PT에서 당직을 맡은 경험도 없다. 그러나 범국민적 인기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룰라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은 딜마의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며 단숨에 유력한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10% 미만에 머물던 호우세피의 지지율은 룰라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상승세를 계속했으며, 대선을 1~2개월 앞두고는 야권 후보들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조제 세하 = 1942년 3월 19일 상파울루 시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칠레 여성이며,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브라질 최고 명문 상파울루 주립대학(USP) 공과대학을 다녔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으며, 1972년 칠레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USP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1963년에는 브라질 최대 대학생 조직인 전국학생연합(UNE)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64년 군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65년 칠레로 옮겼으며, 1973년 칠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미국으로 피신했다.

1978년 브라질로 귀국한 세하는 상파울루 주정부에서 기획부 장관 등 공직을 거친 뒤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1988년 PSDB 창당에 참여했으며,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패배했다. 이어 1990~1994년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뒤 1994년 말 총선에서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룰라 대통령의 전임자인 페르난도 엔히케 카르도조 전 대통령(1995~2002년 집권) 정부에서 연방 기획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996년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1998년 연방 보건장관으로 기용된 세하는 효율적인 에이즈 퇴치 정책을 추진해 행정력을 인정받으면서 브라질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카르도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2002년 말 대선에 출마했으나 결선투표에서 룰라 후보에게 패했으며, 2004년 지방선거에서 상파울루 시장에 당선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2006년 선거에서 상파울루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두 번째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 3월 말 주지사직을 사임했다.

경제학자로서 주정부와 연방정부에서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고, 정치인으로서도 비교적 화려한 경력을 갖추고 있으나 카리스마와 추진력,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제휴 정당인 민주당(DEM) 소속 안토니오 페드로 데 시케이라 인디오 다 코스타(39) 연방하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듯 했으나 대선 출마 선언이 늦어지면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혔으나 올해 들어서는 30% 아래로 추락했다.

세하 자신은 결선투표에 가면 역전승을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여론조사 결과는 모두 부정적으로 나타나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70세를 앞둔 나이를 감안할 때 올해 선거가 그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대권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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