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하나로 닷컴] <편집자 주> 우여곡절 끝에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이 개원했다. 5만 교민들의 기대가 크다. 이와 관련하여 주 상파울루 MBC 지사장 겸 특파원을 역임한 MBC 정길화 PD(시사제작국 PD수첩 담당)의 특별기고를 게재한다. 갓 출범한 한국문화원의 의의와 과제에 대해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일독을 바란다.
삼바와 카니발의 나라 그리고 지구촌 최고의 축구 강국 브라질. 브릭스(BRICS)의 선두주자로 남미의 맹주인 브라질. 이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지난 10월 23일 한국문화원이 개원했다. 상파울루는 남미 최대의 도시이며 브라질 경제의 중심지다. 무엇보다 올해로 이민 50년 역사를 맞게 된 한국 교민이 5만 이상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세계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고 상호간의 교류증진 및 이해를 도모하고자 지난 1979년부터 해외에 한국문화원을 설립했다. 도쿄와 뉴욕을 시작으로 LA, 파리, 베이징, 베를린 등 세계 주요 도시에 꾸준히 증설되어 25개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번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은 26번째 해외 한국문화원이 된다고 한다.
그 동안 중남미권에서는 2006년에 개원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국문화원이 독보적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멕시코시티에 두 번째 문화원이 개원했고, 이번에 상파울루가 세 번째다. 국제사회에서 떠오르는 브라질의 위상, 점증하는 한국과 브라질의 교류 그리고 반세기 한인 이민의 역사와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이제야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이 개원하는 것은 실로 만시지탄이다.
이제 상파울루 한국문화원은 브라질에서 한국문화 전파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된다. 서상면 초대 원장이 말하듯(10.23 연합뉴스), K-POP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세종학당, 태권도 교실, 한국요리 강좌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문화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한류의 메카 역할을 할 것이다. 참으로 기쁘고 소망스럽다.
필자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주 상파울루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재임한 바 있다. 취재, 제작 기능을 수행하는 일반적인 특파원에 더하여 방송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는 지사장 역할은 언론계에서는 처음으로 수행되는 영역이었다. 중남미는 스페인어권과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로 대별되는데 사실상 이전까지 브라질은 한류의 무풍지대였다. 본인은 브라질 한류 시장의 개척자로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각오로 치열히 임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특히 필자가 재임한 기간은 바야흐로 브라질의 한류가 촉발되는 시점이었다. K-POP을 선두로 한국문화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부상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MBC 지사는 방송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고자 분투 노력하였다.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방송콘텐츠 마켓인 ‘포럼브라질TV’에 한국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3년 연속으로 참가했으며, 시내 중심가인 파울리스타에서 ‘리브라리아 쿨투라(Livraria Cultura)’와 함께 K-POP 실황 DVD를 상영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 이벤트는 주최측에 의해 ‘K Invasion(한국의 침공)’으로 소개되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면서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브라질 주류 방송에 MBC의 드라마 등 방송 콘텐츠를 진입시키는 것은 될듯 말듯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개 지사가 독자적으로 브라질에서 한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의외로 두터운 브라질의 문화적 보수성, 만만치 않은 각종 진입 장벽 등. 당시 필자는 ‘상파울루에 한국문화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아쉬움을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화원과 공조체제를 갖추어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가 많이 있었으나 가시화되지 못했고, 마침내 MBC 상파울루 지사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2년 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물론 문화원의 존재가 화룡점정의 묘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화원이 있는 나라와 아닌 나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가령 가까이에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국문화원을 보면 K-POP, 방송 콘텐츠 등 한류 활성화와 관련하여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상파울루에 진작 한국문화원이 있었다면 아마도 MBC 중남미지사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소망하던 한국문화원이 이제 상파울루에 들어섰다. 그 바람이 어찌 필자뿐이겠는가. 5만 교민의 열망, 수교 50년(2009)과 이민 50년(2013)을 맞은 양국의 교류와 호응의 결과다. 작금 브라질 내 한국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파울루 한국문화원 설립으로 뛰는 말에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원 관계자는 이러한 맥락과 의미를 명심하여 비상한 노력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히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면 우선 상투적이고 도식적인 이벤트나 사업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 또는 한류 하면 떠오르는 판에 박힌 레퍼토리보다는 브라질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싱그럽게 자극하는 아이템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일방통행의 쏟아 붓기 식은 상상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당장의 전시효과가 아닌 장기적인 삼투(滲透)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브라질이 갖고 있는 500년 역사와 2억 인구의 문화적 저력은 간단치 않다. 브라질은 음악,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룬 문화강국이다. 방송 콘텐츠만 보더라도 브라질 텔레노벨라(telenovela)의 장르적 특성과 막강한 소구력은 특기할 만하다. 브라질의 역사적 전통을 이해하면서 눈높이를 맞추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민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이다. 50년 이민 역사와 5만 교민은 문화원의 푼다멘타우(fundamental)다. 서로 공조하고 연대하여 브라질 내에서 한국 소시에다지(sociedade)의 고양을 이룩할 동반자다. 문화원이 전파해야 할 ‘한국문화’에는 교민사회의 디아스포라 문화도 포함될 것이다. 또 문화원을 통해 한인 사회의 역량이 성숙해지면 브라질 내에서의 위상이 제고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문화원에 너무 많은 것을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 저어스럽다. 그렇지만 이는 반가움과 기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위에서 말한 여러 내용들의 실천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바로 불굴의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다. 상파울루 한국문화원 설립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건투를 기원한다. <필자 : 정길화 (현 MBC 시사제작국 PD, MBC 중남미지사장겸 특파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