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나이에 벼농사 “쌀의 여인” 상 받은 아라시

by 인선호 posted May 07,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요즘 큰 슈퍼에서는 쌀을 한 사람이 몇 포 이상은 가져가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쌀값이 오르고 나라에서는 쌀 수출을 중단하는 등의 분위기 가운데 일부 소비자들이 쌀 품귀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사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포 사이에 쌀값이 40% 뛰어 1킬로에 2헤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름세 추세에 있다.

쌀값이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쌀값이 오르지 않아 쌀영농인이 농사를 적게 지었고 추수한 쌀은 다른 나라에 수출해 금년 내수 시장에 쌀이 모자라게 됐고 자연 쌀값이 오르는 것이다.

브라질의 쌀 산지는 리오 그란데 도술(Rio Grande do Sul)로 국내 전체 쌀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그리고 중부지방에 위치한 인구 9만의 소도시 까쇼에이라도 술(Cachoeira do Sul)은 “쌀의 도시(Capital nacional do arroz)”란 칭호를 받고 있다.    

2007년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날씬하고 세련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 아라시 세베로 고도이(aracy Severo Godoy)는 리오 그란데 도술 농촌연맹으로부터 “쌀의 여인(Mulher do Arroz)” 상을 받았다. 쌀과 관련된 상을 여성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으며 그동안 쌀과 관련된 상은 학계나 언론 종사자, 정치인에게 돌아갔다. 벼 농사에 종사하는 여인으로 화제에 오른 사람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쌀의 여인”상패를 받아든 아라시 여인은 얼굴도 곱상하고 눈은 초롱초롱 빛났으며 몸매도 가늘고 여성다워 누구의 눈에도 나이보다 20년은 젊은 70대로 보일 정도였다. 아라시 여인은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월에 출생했다. 그녀는 상에 대한 보답으로 “하늘이 허락한다면 100살까지 벼농사를 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951년 육군 준위로 복무하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갑자기 잃게 됐다. 그녀는 죽은 남편의 연금만으로는 두 딸을 교육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사고를 당하기 얼마전 아버지로부터 유산분배 받은 작지 않은 160헥타 면적의 땅이 고향 까쇼에이라 도술 가까이에 있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는 도시에서 25킬로 거리 까빠네(Capané)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동네를 가로 지르는 수량이 풍부한 자꾸이(Jacuí)강으로부터 물을 끌어 들여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갖춘 곳이다.

막내인 아라시는 땅을 위로 3명의 오빠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귀향하니 오빠들이 반겼고 또 농사일을 기꺼이 가르쳐 주었다. 아라시는 우선 50헥타 넓이의 땅에 주작물인 벼 이외에 밀, 콩, 아마 농사를 짓는 한편 소를 길렀다. 목축 사업의 이익이 괜찮아 그녀는 땅을 더 매입하고 영농과 목축업을 확장해 나갔다. 처음에는 농기구들을 오빠에게 빌려 썼으나 수익이 생기면서부터 바로 트랙터, 파종기, 경작기, 탈곡기 등 영농 기구들을 하나 하나 장만했다.

지금 아라시는 부친으로부터 받은 땅의 10배 되는 1.500헥타의 토지를 갖고 있으며 소 1.600두를 기르고 있다.                        

사진설명 : “100살까지 쌀농사 짓겠다”고 아라시 여인은 말한다. 강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짓고 있는 리오그란데 도 술 논의 모습.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