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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를 모르는 한국사람이 없다. 카스테라는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전해졌지만 한국에 앞서 일본에 전해준 사람들은 포르투갈인들이다.

서양에서 전해 받은 케이크가 일본화돼서 다시 브라질에는 100년전 일본 이민들에 의해 들어왔다. 그래서 카스테라를 일본케이크라는 의미로 눈 찢어진 나라 사람들의 케이크(O bolo de olhos puxado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543년 풍랑을 만난 포르투갈 상인 3명을 태운 왕골로 만든 배가 일본 최남단 다네가시마 섬에 떠 밀려왔다. 일본인들은 그때 서양인을 처음 보았다. 그뒤 일본 남쪽에 위치한 나가사키항구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무역선들이 들락거리면서 두 나라사람들은 교역을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뽕디로(pão-de-ló)라고 부르기도 하고 까스텔라(castela)라고 부르기도 하는 케이크를 일본에 전했다. 이 케이크는 달걀 노른자가 아주 많이 들어가고 당시 일본에서는 구하기 힘든 밀가루와 설탕이 들어가는 일본인들에게는 귀한 먹거리에 속했다.

여러 개의 달걀을 깨서 저은 다음 숟가락에 건졌다가 떨어뜨렸을 때 달걀 크림이 진해 성(城-castelo)이나 작은 산같이 생겼다고 해서 카스텔라(kasutera)라고 불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조앙 1세(1357-1433)때 통용됐던 예전 화폐의 이름 가스텔랴냐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것이 진짜 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여튼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일본사람들에게 전해준 케이크는 지금도 두 나라 교역의 중심지였던 나가사키인들이 제일 잘 만들고 있으며 천안의 호도과자 같이 “나가사키 카스테라”하면 이 고장 관광상품으로 여행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나가사키에는 100년, 200년 ,300년된 대대로 내려오는 카스테라 명가들이 지금도 문을 열고 있을 정도이다.

1547년 조르제 알바레스 포르투갈 선장이 일본에 배를 정박했다.

그곳에서 안지로(포어 이름으로 안젤로?)라는 젊은이를 만나 그를 말라까(지금의 말레지아)로 데리고 가서 예수회 신부 스판시스코 사비에르(예수회 공동창립자)에게 소개했다. 브라질 식민개척을 시작한 동조앙 3세(1502-1557)가 사비에르 신부를 인도 선교사로 임명했다. 선교 활동을 하던중 일본인 안지로를 만나게 됐다.

안지로로부터 일본인의 풍습이며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자 흥미를 갖게 된 사비에르 신부는 안지로와 다른 일본인 한명 그리고 예수회 신부 2명을 동반하고 1549년 일본에 도착했다. 지방 봉건영주 다이묘(大名)로부터 카톨릭교 포교 허락을 받은 사비에르 신부는 가고시마, 히라도, 야마구치, 사카이, 교토(당시 수도)등 도시를 순회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세례주었다.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신부는 1552년 일본땅을 떠났으며 카스테라는 포르투갈인들의 무역과 선교활동의 영향으로 일본땅에 널리 전파됐다. 일본인들은 포르투갈인이 전해준 기술에다 일본에서만 나는 녹차가루(마차)와 바닐라향을 더 첨가해 이 케이크를 일본화 했다.

상파울로의 일본인 제빵업자들도 수백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료를 그대로 유지해 카스테라를 만들어 동양인 손님들에게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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