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대물림…연금 대신 ‘총’택한 서민들

by 허승현 posted Mar 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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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차 없이는 밤이고 낮이고 간에 돌아다닐 수가 없는 게 상파울루의 현 상황입니다."

지난 2001년 브라질로 건너와 5년째 외환은행 현지법인장을 지내고 있는 황순갑 사장은 "브라질의 일반국민들은 치안 부재에다 당장 먹고 살기에 바빠 연금 자체에 관심조차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리우데자네이루시에서는 대낮에 조직간 총격전이 벌어져 무고한 주민 10여명이 숨졌다. 연금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브라질를 방문했지만 몸에 와닿는 건 연금이 아니라 치안 문제였다.

■'치안 부재', 연금 불신서 초래

LG전자 브라질 법인은 현지의 휴대폰 및 가전제품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연매출 4조원을 육박, 10대그룹안에 편입됐다. 현지에서 LG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러다 보니 이곳 관계자들이 영업실적 때문에 고민하는 적은 별로 없다. 이들의 고민은 바로 치안부재. 언제 어디서 무장괴한의 납치표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쇼핑할 때도 보디가드를 대동할 정도다.

낙천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삼바의 나라 브라질의 치안부재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브라질에 진출한 한 상사 관계자는 "브라질의 치안은 아마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이라면서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결국 빈곤층이 현재의 열악한 환경에서 탈피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이는 연금제도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복잡한, 그러나 실패한 연금제도

브라질의 연금제도는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우선 노동부(INSS)가 징수하는 사회보장세가 있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일정비율을 납부, 근로자가 정년 이후에 매달 일정금액을 지급받도록 한다. 그러나 노후 보장금액은 공무원과 민간근로자에 다르게 적용된다. 직군에 따라 징수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민간근로자간에 수급금액이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급여의 8%를 추가 공제, 국책은행에 운용을 맡기는 제도도 있다. 국민연금(FGTS)이라고 불리는 제도다. 퇴직금의 성격이 강한 이 연금은 급여의 8%를 사업주가 부담한다. 가령 30년을 근무하고 퇴직하면 15개월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시 지급받는다.

하지만 정년 이전에 사업주가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이 적립금을 털지 않으면서 적립금액의 40%를 사업주가 의무지급하게 돼있다. 따라서 브라질에서는 장기근속한 근로자가 해고를 당하기 위해 업무를 태만하거나 상사에게 대드는 경우가 흔하다.

마지막으로 재무부가 징수하는 실업급여(PIS)제도가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연금은 복잡하기만 할 뿐 일반국민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부에서 징수하는 사회보장세는 징수가 안되고 수령할 사람은 많아 거의 파산직전이다.

상파울루 FGV대학 경제학부 마칠로 라벨로 교수는 "30∼40%를 웃도는 고금리로 인해 가난한 자는 영원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치안부재라는 결과를 낳았다"며 "미래를 준비하는 연금이 자리잡기에는 대부분의 서민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개혁주도 세력 나와야

브라질은 정치권과 노조, 공무원 및 직종간 이해관계가 얽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인들은 당장의 표심에 목이 말라 선심성 정책만 남발할 뿐 급여 삭감 등 제밥그릇을 내칠 수 있는 사안엔 묵묵부답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연금개혁에 소극적이다. 사회통합과 계층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입된 연금제도가 기득권의 치부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 연금 관련 '잠재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0%인 약 60조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적자의 30∼40%는 공무원 연금에서 발생한다. 사회보장세를 징수하고 관리하는 사회보장부 연금관리국(INSS)은 전국에 1200개 지점이 성업중이다. 관련 공무원만 최소 2만명이 넘는다. 실질적 연금적자의 주범인 이들이 정부가 연금 개혁에 나서자 파업으로 맞선 사례는 개혁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 결과 판사같은 고급공무원들은 퇴직 전 급여의 100%인 월 3만헤알(약 1450만원)을 받으면 일반 직장인은 연금 상한선인 2400헤알(약 116만원)을 넘지 못한다.

개혁의 깃발을 높이 걸고 룰라 정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개혁안의 핵심은 공무원 연금급여 상한선을 최종 급여가 아닌 평생급여 평균의 80%로 제한한다는 점. 그러나 이는 신규 공무원이 퇴직하는 35년 이후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INSS 레오나르도 앙드레 파이사웅 국장은 "묵시적 연금부채를 줄이고 부정 수급자를 적발키 위해 탈세조사 강화 및 연금수급자 재등록 작업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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