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리고 맛볼땐 코카·펩시 구분 잘 못해
상표 보이면 ''기억 재생하는 뇌영역'' 흥분
당신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중 어느 쪽을 더 좋아 하는가. 사람들은 각각의 콜라가 지닌 맛의 차이를 들어 어느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콜라의 선호도는 입맛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당신의 뇌가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을 뿐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맛이나 화학성분에 있어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특정 콜라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베일러 의대의 리드 몬태규, 새뮤얼 매클루어 박사 연구팀은 신경과학 전문지인 ‘뉴런’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눈 가리면 선호도 차이 없어
연구팀은 우선 67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어떤 콜라를 좋아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다음, 상표를 보여주지 않은 채 맛을 봐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설문조사에서 좋아한다고 밝힌 콜라의 종류와 실제로 더 맛있다고 선택한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절반 가량이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이전의 연구결과들과 일치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반드시 순수한 맛 경험에만 바탕해 콜라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 RI)로 맛을 보면서 어느 한 브랜드를 선택할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조사했다. 특정 지역의 뇌 세포들이 흥분하면 에너지원인 산소가 필요하게 돼 그 곳으로 혈액이 공급되는데, fMRI는 이러한 혈액 공급정도를 측정해 뇌의 활성정도를 추정하는 도구이다. 실험 결과 사람들이 더 맛있다고 느낄 때는 뇌의 좌, 우반구 사이의 앞쪽에 자리한 배안쪽 이마앞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더 강하게 흥분했다. 연구팀은 “뇌의 이 부위는 좋아하는 맛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상표 보이면 선택 달라져
두 번째 실험은 두 잔의 콜라 가운데 한 잔에만 특정 상표를 붙이고 실시됐다. 상표가 붙지 않은 잔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만약 코카콜라 상표가 한쪽에 붙어있을 때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펩시를 좋아한다면 상표가 붙지 않은 쪽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실험 결과 놀랍게도 펩시보다는 코카콜라 상표 쪽을 선택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왔다. 즉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가 더 강했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에도 fMRI 촬영을 했는데, 대뇌 위쪽·앞쪽에 자리한 등쪽 이마앞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가 흥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롭게도 앞서 활성화된 배안쪽 이마앞피질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등쪽 이마앞피질은 정서적인 정보에 따라 어떤 행동을 선택하게 만드는 기능과 관련돼 있으며, 해마는 기억·학습과 관련된 영역이라는 것이 이제까지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코카콜라 상표를 보면 뇌는 자신에게 호감을 준 광고와 마케팅과 같은 정보를 되살려 그쪽을 선택하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콜라는 ‘맛’이 아니라 ‘브랜드’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학습기억현상연구단 신희섭 단장은 “브랜드 파워가 상품의 선호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상식을 뇌 연구를 통해 확증한 것”이라며, “맛이 주는 쾌감을 처리하는 뇌 경로와 경험을 통해 축적된 브랜드 파워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경로가 나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대한 선호도 차이는 맛이 아니라 뇌에 각인된 브랜드 때문이었다. 상표를 보고 코카콜라를 선택한 사람의 뇌에서는 정서적 정보와 편향된 행동에 관련된 영역(위에서 두번째 뇌 사진 맨 오른쪽)과 기억·학습과 관련된 영역(뇌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이 불이 켜지듯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의 뇌를 읽는다
몬태규 박사의 콜라 선호도 연구는 이미 논문 출판 전부터 ‘포브스’를 비롯한 경제 전문지들에 잇따라 소개됐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광고나 마케팅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뇌 차원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처음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근 이처럼 사람의 경제행위를 뇌를 통해 분석하는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 새로운 학문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신경경제학은 나중의 더 큰 이익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익을 좇고,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약속을 어긴 사람들을 징벌하는 이타적 행동에서부터 스포츠카나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행동까지, 경제학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경제행위들을 원숭이 실험이나 이번과 같은 fMRI 연구를 통해 규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fMRI로 신경경제학 연구만 전적으로 하는 기업이 미국에 세워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명품과 대중용품의 브랜드 효과 등 신경경제학 연구결과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소비자의 ‘뇌’를 읽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