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질` 중독… 즐거운 고통

by Khadija posted May 3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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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사생활 엿보기… 가입 675만, 정당대표·재벌총수 딸까지
성별·출생년도만 알면 쉽게 접근… 과거 캐내 스토킹·협박, 부작용도 심각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독특한 시장이다. 특히 추억과 향수에 기반한 인적인 네트워크에 착안한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에 이처럼 열광하는 나라는 없다. 싸이월드 가입자수 675만 명.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유인태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재벌 총수 딸까지 ''싸이질''을 했다. 기업들은 ''직장 내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1인 미디어는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았다.

싸이월드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사무실 내에서 "싸이질"을 못하게끔 "금지령"을 내린 회사들도 속속 늘어가고 있다.

정치인 중 가장 활발한 "싸이질"을 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일 `싸이 1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생활 노출 부분과 중독성이다. 요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하루에 2시간씩은 한다는 이른바 ''싸이질'' 때문에 빚어지는 황당 요지경 사례들을 IS리포터들이 취재했다. /사회부

유부남 C 씨(30.회사원)는 회사에 출근해 오전 업무를 대충 처리한 뒤 사무실 눈치를 휙 둘러본 후 본격적인 ''싸이질''에 들어간다. C 씨는 우선 자신의 미니홈피에 밤새 누가 무슨 글을 남겼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답글을 달아준 뒤 1촌들의 홈피를 한 바퀴 순례하는 것으로 1차 싸이질을 마무리한다.

C 씨의 ''2차'' 싸이질은 자신과 과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미니 홈피를 찾아보는 것. 그날 그날 생각나는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구경한 뒤, 옛날 여자친구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며 추억에 젖는다. 물론 C 씨의 부인은 남편의 이런 모습을 알지 못한다.

▲ "너도 싸이 때문에 헤어졌냐?"

요즘 젊은이들은 ''애인과 헤어졌다''고 하면 친구에게 "너도 싸이월드 때문에 헤어졌냐"고 묻는다. 그만큼 이런 케이스가 흔하다는 뜻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가 인맥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배우자나 미니홈피를 통해 이성친구나 배우자의 과거를 알게 돼 헤어짐이나 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알아봤자 좋을 게 없는 개인정보들이 너무 많이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 "너 성형한 것 다 알아"

문제는 타인의 미니홈피를 너무 쉽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의 이름과 출생년도, 성별만 알면 간단한 검색을 통해 그 사람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글이나 사진 등을 무단으로 퍼갈 수도 있고 ''파도타기'' 등의 기능 등을 활용하면 타인의 주변사람의 일상도 구경할 수 있다.

이때문에 간혹은 사이버 상의 협박, 스토킹 등 불상사도 생긴다. 특정인의 과거를 캐내 위협하거나 성형수술 사실을 알아내 사이버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

▲ "비밀은 없어"

의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근 손 모 씨(23)는 얼마 전 자신의 싸이홈피에서 "앞으로 시위 진압 나올 때 몸조심하라"는 위협성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시위 진압 현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표를 보고 싸이홈피를 뒤져 협박한 것.

1인 미디어는 특별한 방문자 로그온이 필요없다. 그야말로 누구나 볼 수 있다.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들까지 보안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 "솔직히 싸이홀릭입니다"

싸이월드 등 1인 미디어는 특유의 재미 때문에 심한 중독성이 있다. ''싸이홀릭''(싸이 중독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대학생 박 모 씨(22.여)는 "현실의 나와, 또 다른 세상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라면서 "하루라도 안하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안티 싸이월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김 모 씨(24)는 "한때 싸이홀릭이었지만, 사이버 상의 홈피가 산 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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