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 브라질 한인 축구 대표팀 20년만에 해후

by 인선호 posted Sep 06,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로닷컴] 20년전 북한을 방문하여 축구경기를 펼쳤던 역사 속의 교민들이 지난 30일(수) 아클리마썽의 한 음식점에 모여서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보았다.

이백수 당시 체육회장 겸 단장과 김익배 당시 축구협회 회장 겸 총감독을 비롯한 32명은 1991년 8월 26일 상파울로 과률료스(꿈비카) 공항을 출발하여 일본과 북경을 경유하여 31일(브라질 시간 30일) 평양에 도착하여 8박 9일간 머무르며 북한 축구선발 팀과 2회에 걸친 경기를 벌여 1차   1:0(승), 2차전 2:1(패)의 전적을 기록하였다.

당시 최고령자는 환갑을 넘긴 조세화 선수(작고)였고, 팀의 막내는 69년생인 김창진 선수로 브라질 교민들은 모든 연령을 아우르는 넓은 연령층으로 구성되었다.

일본 조총련 고등학교 축구팀(감독 : 이재화)의 브라질 방문이 계기가 되어 당시 조선일보 브라질 지사 하봉률 고문(작고)의 주선으로 당시 이봉우 한인회장, 함종성 체육회장, 이필성 노인회장, 정지영 영사 등과 진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일본 조총련 고등학교 축구팀이 저녁 초대를 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남북교류 협력이 없을 시기였기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1년 6개월여가 지난 후에 북한 방문이 실현되었다. 북한으로의 출발도 쉽지는 않았다. 출발하기 하루 전 북한의 유도선수 1명이 한국으로 망명을 신청했기에 남.북관계가 살얼음 같은 분위기였기에 출발을 앞둔 교민 선수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어야 했다.

북한에서는 김선옥 부부장(차관급)이 최고책임자로 브라질 교민 축구팀을 영접했고, 우리 선수들이 자유스럽게 관광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다. 지금은 북한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김일성 생가에서의 흡연 및 주체사상 탑 방문시 헌화를 하지 않아도 제재조치를 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에피소드도 많았다. 축구 경기 중 부상으로 머리에 혹이 돋았는데 북한 의무팀이 가위를 들고 와서 자르려 했던 일, 아이스 크림을 처음 구경한 북측 선수들에게 우리 선수가 장난으로 젓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자 모든 북측 선수들이 젓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일, 금강산 관광 시 우리 선수 중 한명이 갑자기 선녀탕 속으로 뛰어들었던 일 등 참석한 주인공들은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많은 추억들을 더듬어봤다.

32명의 방문단 중 지금 브라질에 살고 있는 교민은 15명 내외라고 한다. 일부는 작고했고, 일부는 한국과 미국으로 재 이민을 갔으며, 더러는 소재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재외동포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민간교류가 브라질 교민들에 의해 제일 먼저 이루어졌음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소중한 추억이 아름답게 남기를 기원한다.


doo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