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수기 <상전벽해> 저자 박선관씨, 16일 성당에서 출판기념식

by 인선호 posted Jun 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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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닷컴] 브라질 농업이민 1세대인 박선관(朴善寬, 85)씨가 자전적 수기 <상전벽해>(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 다는 뜻)가 오는 2011년 6월 16일(목) 오후 7시에 브라질 한인천주교회에서 출판 기념식을 갖는다.

“10년 전 자서전 발간 계획을 계획하였지만 당시 내용이 미흡하고, 쑥쓰러운 생각에 포기 하였지만 지금은 나이를 들다 보니 선구자들의 노력이 보람되게 씌여졌으면 해서 덮어 두었던 기록과 생각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 말했다.

이번에 출판되는 <상전벽해>는 2년간 편집기간을 거처, 한국 교음사 출판사를 통해 초판 1천 권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의 수기는 현지에 정착한 한인 교포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겪은 고통과 성취의 이민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로, 그의 책 출간을 도운 최금좌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 교수는 17일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해군 창설 멤버인 박 옹은 이민 1세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수 십년 전부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꼼꼼히 기록하며 자서전을 준비해 왔다"면서 "팔순 노인임에도 반듯한 몸가짐과 정신력을 가진 분"이라고 소개했다.

박 옹은 육사 출신으로 브라질 영농이민을 떠난 데 대해 "한국 해군 창설 당시 군내에 만연했던 파벌과 정치적 권모술수로 인한 원한이 나를 브라질로 가게 한 동기였다"고 고백하고 "16년의 해군 생활 중 7년을 배 위에서 보내면서 제대 후 외국으로 나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인 1946년 6월 해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인천 해양경비대 견습사관이 됐고, 6.25사변이 일어나자 유엔 극동함대 연락장교로 일본 사세보(佐世保)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또 1955년 9월에는 미 정부가 제공한 구축함을 인수하기 위해 버지니아주 노포크(Norfolk)에 있는 미 대서양함대 사령부에서 교육을 받는 등 한때 전도가 유망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1961년 7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의해 예편되자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어 이민을 결심했다.

그를 포함, 예비역 11명으로 구성된 농지사전준비위원과 영농이민 가구 17세대 89명을 태운 첫 브라질 이민선 치차렌가(TJITJALENGKA)호는 1962년 12월18일 부산항을 떠나 52일 만인 1963년 2월12일 목적지인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했다.

당시 그는 혼자였고 아내와 세 아들은 10개월 뒤인 1963년 11월 2차 브라질 이민선 루이스호를 타고 합류했다.

박 옹은 함께 간 일행 2명과 함께 산타나주 이타라레에 정착해 있던 일본인에게서 땅을 구입, 병아리 1천500마리로 양계업을 시작해 5년만에 닭 9천마리를 사육하기에 이르렀다.

박 옹과 가족들은 그 후 1969년 1월 농장을 팔이 치우고 상파울루로 이주했다. 당시 상파울루에는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손재간이 있는 사람들은 천을 사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을 해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제품 수요가 날로 늘어나자 한인들은 삯바느질하는 사람들을 고용, 봉제전문 공장을 세웠다.

박 옹은 "그것이 브라질 동포들의 의류제품업의 시발이었다"며 "현재 중남미 최대 의류 생산기지인 상파울루시 봉헤치로 시가와 브라스 상가의 거의 모든 점포를 한국인 의류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며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이민을 계획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민선배, 인생 선배로서 이 책이 사용되었으면 한다” 며 “출판 기념식에 많은 교민들이 참석해 축하해 주기 바란다” 고 전했다. 출판 기념식 후에는 저녁 만찬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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