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값도 못 건지는 밀어내기 ‘창고 영화’

2008.11.10 21:17

장다비 조회 수:8011 추천:93



신동일 감독의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 가 최근 개봉일을 잡았다. 신동일 감독은 장편 데뷔작 < 방문자 > 로 2006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우디 알렌'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감독. 그의 두 번째 영화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 도 카를로비바리, 시애틀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그 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추천작 7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는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해외영화제에서의 호평과 모니터 시사회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작사쪽은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개봉시기가 계속 늦춰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 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영화의 잇단 흥행 부진으로 인해 제작이 끝난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고 창고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제작은 끝났지만 흥행을 장담하지 못해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영화가 20여 편이 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국영화 침체, 앞이 안 보여

한국영화가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투자는 60%나 줄었고, 1년에 100편이 넘던 제작편수도 40여 편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시장 상황에서 적정 편수인 60여 편에 훨씬 못 미친다. 내년에는 30편에도 채 안 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하다.

제작편수가 줄어든 것에 비례해 흥행성적도 하향곡선이다. 지난해 124편 중 손해 본 영화는 111편(89%)이나 된다. 올해라고 나을 것도 없다. 70여 편의 개봉작 중 그나마 단돈 100원이라도 번 영화는 대 여섯 편뿐이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전국 690만 명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흥행작에 올랐지만 200억원에 육박한 제작비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맞췄다.



한 영화관계자는 "영화는 극장에 걸리는 순간까지 준비기간이 길다"며 "올해의 침체는 내년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극장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처지"라며 현재의 불황이 길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영화는 지금 대공황 상태"라며 "적정 편수는 60여 편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현재 40편에도 못 미친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관객의 트렌드 못 따라 잡아

한국영화의 흥행부진은 거품, 시장의 왜곡, 정책의 실패, 경제 상황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완성도에 있다. 관객들은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해 함량 미달이라며 염증을 내고 있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재미있다'며 극장을 찾던 관객들이 지금은 '한국영화는 볼 게 없다'며 고개를 돌린다.

한 영화마케팅 관계자는 "2∼3년 전 충무로에 돈이 넘쳐날 당시 부실한 기획과 미완성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이들 영화는 사실 드라마보다 재미가 없다. 주말마다 공중파로 보는 '조강지처 클럽'이 더 재미있는 판에 누가 돈을 내고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겠느냐"고 지적했다.

항간에서는 올해 개봉한 이런 영화들을 가리켜 '창고 영화'라고 한다. 이들 영화는 올해 초부터 창고 방출을 시작했지만 줄줄이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날라리 종부전' '무림여대생' '도레미파솔라시도' '서울이 보이냐' '사과' 등은 영화가 만들어진 2∼3년 후에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그 사이 관객의 트렌드는 저만치 앞서나갔다. 자기중심적 세계관, 동성애, 멜로의 역발상 등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는 소재가 됐다.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그려졌던 정통적인 드라마는 관객들의 흥미를 잃었다. 대신 그 자리를 감정의 극과 극을 치닫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드라마가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 격주간지 < 프리미어 > 의 전기영 편집장은 "한국영화의 장기적인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배급사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지명도가 낮은 제작사와 감독, 배우의 영화가 갈수록 극장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반발도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어떤 제작자나 감독이 좋은 영화를 잘 만들고 싶지 않겠느냐. 이들 영화를 창고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위험하다"며 "개봉시기가 밀려서 그런 것일 뿐 추가 투자비용 등 각 영화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인쇄 필름 값마저 건지지 못하는 영화

제작, 투자, 국내흥행, 해외수출, 관객 등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한국영화의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 아내가 결혼했다 > 의 경우 200만 명 이상이 관람해야 순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제작사에 따르면 < 아내가 결혼했다 > 의 총제작비는 50억원(순제작비 32억원, 마케팅비 18억원). 200만명이 극장을 찾을 경우 배급수수료(10%)를 빼고 54억원 가량의 이익이 남는데, 원가를 빼면 4억원 가량을 손에 쥐게 된다. 여기에서 제작사에서 30%(1억2000만원)을 먼저 가져가 공동제작사와 나눠 갖는다. 각 투자사는 2억8000만원을 놓고 투자 비율대로 나눈다.

그래도 < 아내가 결혼했다 > 는 행복한 편이다. 비록 예매순위 1위에서 밀려났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길 경우 나눠 가질 몫이라도 있다. 어떤 영화들은 제작비와 후반작업 비용, 마케팅비는 고사하고 인쇄필름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통 필름 한 벌을 만드는데 평균 200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입회비를 포함한 관리비가 20만원가량. 평균 필름 한 벌 제작에 220만원이 드는 셈이다. 100개관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비용은 대략 2억2000만원. 이 영화가 전국적으로 8만명을 동원했다면 극장과 영화사가 5:5의 비율로 나누고 배급수수료와 세금을 공제하고 나면 관객 한 명당 2600원이 제작사에게 떨어진다. 2억800만원을 버는 셈이다. 결국 인쇄 필름까지도 빚이 되고 만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창고영화'에서 개봉한 한국영화의 수익률은 전국 관객기준 8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돈을 구하려고 해도 씨가 말랐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피해자 2세들이 전직 대통령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내용으로 김아중, 류승범이 캐스팅된 영화 < 29년 > 의 제작이 최근 무기한 연기됐다. 항간에서는 정치적 소재를 다루고 있어 외압으로 제작이 어려워졌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주 이유는 투자유치 부진이다. < 29년 > 의 총제작비는 대략 70억원 내외. 예산 중 1/3은 제작사인 청어람이 맡고 나머지 2/3은 창투사를 비롯한 투자사와 배급을 전제조건으로 배급사로부터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민감한 소재와 경기악화 탓인지 투자사와 배급사가 발을 빼자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현재의 한국영화 부진을 진단하는 목소리는 많다. 제작사들은 돈타령을 한다. '없는 곳간에서 좋은 작품이 날 수 없다'며 지갑을 닫고 있는 투자사들에 대해 불평이다. 한 제작자는 "지금이 98년 IMF때보다 더 힘들다. 창투사, 영상펀드 등 어디 한 곳이라도 투자가 되는 곳이 없다. 한마디로 돈줄이 꽉 막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투자사는 수익률 하락에서 어떤 투자사가 선뜻 투자를 하겠느냐는 반문이다. 한 투자자 관계자는 "은행이자조차도 내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며 "손실이 더 커질 것이 뻔히 보이므로 옥석을 가려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는 최근 한국영화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총 8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부족해보이고 세부 계획은 나오지 않아 충무로에서는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영화판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지금은 평균 제작비 20억원 이하의 작지만 강한 영화가 필요할 때다. 제작자는 물론이고 스태프와 배우들이 합세하여 회차를 줄이는 등의 군살빼기를 하지 않으면 현재의 불황은 계속 갈 것이다. 100만 명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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