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로는 대관극장 급증…상업화 나락에

〈소극장 연극인들이 대학로를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땅값이 저렴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혜화로터리 위쪽에 자리를 잡았고, 어떤 이들은 이주를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현재 대학로는 더이상 연극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 3년, ‘비싼 대학로’는 연극인들을 쫓아내고 있지만 소극장 연극인들은 새 장소에서 새 꿈을 퍼올리고 있다. |편집자주〉

◇혜화로터리를 건넌 소극장 ‘꿈의 거리’

혜화로터리 위쪽, 작은 도로(우암길) 하나로 명륜동과 혜화동으로 갈리는 그곳(지도)에 소극장들이 모이고 있다.

소극장 ‘모심’앞에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대표(왼쪽)와 공연기획사 ‘Show&Life’의 임정숙 기획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숭무대’ ‘게릴라극장’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외에 소극장 ‘모심’과 신규건물 지하에 소극장이 한곳 더 들어설 계획이고, 현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내년에 연극박물관과 소극장 두곳으로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아트브릿지’ ‘Show&Life’ ‘코아프러덕션’ ‘펜타토닉’ ‘여유作’ ‘성시어터라인’ 등 공연기획사와 극단사무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근처에 있는 ‘나무와 물’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연우무대’까지 합하면, 혜화동 윗동네가 사실상 소극장 연극인들의 새로운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극장 연극인들은 턱없이 높은 대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로터리를 건넜다. 현재 대학로 소극장 대관료는 하루에 50만~80만원으로(200석 규모는 100만원선) 세금을 포함하면 한달 평균 1500만~1800만원이나 된다. 반면, 명륜·혜화동은 월 200만원 정도로 무려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최영 기획팀장은 “대학로 건물지하에 소극장을 임대해 운영해봤지만 계속해서 나가는 고정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며 “대관료를 못내서 공연을 못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건물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연희단 거리패는 2006년 6월 대학로를 떠나 혜화동 15의 29에 ‘게릴라 극장’을 개관했다. 몇년간 본전 생각은 접기로 했다. ‘게릴라 극장’은 연희단 거리패 전용극장이지만 재능있고 가난한 연출가들에게 대관료를 받지 않고 극장을 빌려주고 있다. 개관한 지 이제 1년을 조금 넘겼지만 ‘경숙이, 경숙아버지’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등의 히트작을 내놓으며 관객들이 물어서 찾아오는 극장으로 자리잡았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2005년 9월 명륜동 1가 36의 13 건물 지하에 당구장을 개조해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전용극장으로 만들었다. 티켓값은 “관객이 적은 비용으로 즐거운 연극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김정숙 대표의 지론대로 차 한잔 밥 한끼 값인 1만원. 저렴한 값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2년 가까이 매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모시는 사람들’은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길 건너편인 혜화동 74의 38에 단란주점을 개조해 소극장 ‘모심’도 만들고 있다. 7월말 완공한 뒤 10월초 개관공연으로 ‘몽연’을 올릴 예정이다. 극단 단원들이 모여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조명공사를 하는 등 새 보금자리 꾸미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정숙 대표는 “대학로 소극장은 1년 임대하는 데 1억8000만원 정도 들지만 이곳에서 건물을 소극장으로 개조하는 데는 8000만원 정도 든다”며 “훨씬 더 저렴한 값에 단원들이 안심하고 공연할 수 있고 관객들도 저렴한 비용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소극장의 장점은 자유로운 실험정신”이라며 “획일적인 소극장이 아니라 객석과 무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구성해 관객들이 풍성한 무대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모심’ 역시 ‘게릴라 극장’처럼 ‘나눔의 극장’ 형태로 가난하지만 꿈많은 이들에게 공연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공연기획사 ‘아트브릿지’의 신현길 대표는 “좋은 기획과 작품만 있다면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진정한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대표는 “유흥가처럼 변한 대학로에 비해 이곳은 오랫동안 한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분들이 많은 만큼, 지역주민들과 함께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등 문화의 거리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포화상태로 발달한 대학로에서 문화지구를 확대해 나가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난 7일 ‘가변무대’ ‘글로브극장’ ‘단막극장’ ‘동무대소극장’ ‘76스튜디오’ ‘우석레퍼토리극장’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등 7개 소극장이 ‘7star’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창단식을 가졌다. 이들은 5~7년내 다른 지역에 문화촌을 만들어 대학로를 떠날 계획이다. 이번 연대는 대학로를 떠나기 전 공동운영능력과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극장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박장렬 연대대표는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되고 연극인들에게 돌아온 건 빚뿐”이라며 “월세가 올라가니 티켓값도 오르고 40~50대가 볼 만한 연극 한편 없이 상업적인 성공을 의식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는 더이상 연극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대표는 “연극으로 흥한 동네에서 생긴 수익이 연극인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상인들과 건물주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앞으로 소극장들의 참여를 더욱 확대해 작품개발부터 관객관리, 마케팅, 재정운용까지 건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7star’는 먼저 7개 소극장 객석의 각 20%를 7000원으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세븐 티켓’을 내놓기로 했다. ‘사랑티켓’이라는 할인제도가 있지만, 아동극이나 뮤지컬, 장기흥행작에 대부분 돌아가고 정작 연극초연작들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만들었다. 6개월에 한번씩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극장평가제’도 실시한다. 단골 관객들이 극장에 별점을 매겨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한다. 극장별로 차별화도 안되고 작품관리도 안되는 상황에서 “관객이 극장에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한” 방안이다. 내년 11월에는 페스티벌을 열어 극장별로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올릴 예정이다. 박대표는 “이 실험이 성공해도 대학로는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되면 잘되는 만큼 건물값은 계속 오르고 제작비의 60~70%가 대관료로 나가는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7개 소극장들은 제작능력을 갖춘 극단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셋방신세’다.

-지금 대학로는 대관극장 급증…상업화 나락에-

대학로 소극장은 문화지구로 지정된 2004년 46개에서 현재 80~90여개로 크게 늘어났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나도삼 연구위원은 “대학로는 외적으로 보면 번성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심각한 골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극장은 늘어났지만 극장주인은 연극인이 아니라 건물주고, 대관극장이 많아지면서 대관료가 올라 연극계 자체가 상업화됐다”고 말했다.

건물 안에 공연장을 설치하면 의무주차대수 기준을 완화해주고 용적률 인센티브도 주다보니, 혜택을 노려 ‘끼워넣기’ 식으로 극장을 짓는 업자들도 많아졌다.

문화지구라는 ‘이름’만 있을 뿐 실질적인 관리는 거의 없다. 종로구청은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 2년이 지난 작년 9월에서야 ‘업소 단속’에 나섰다. 단란주점, 성인 PC방 등의 위락시설이 더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영업중인 점포는 강제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 ‘법’이고, 음식점의 경우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최소 극장이 몇% 이상 있어야 한다’는 규제도 없어 문화의 거리에 극장보다 음식점이 많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거대자본’이 아니면 대학로에 발붙일 수 없다는 냉소도 만연해졌다. 동덕여대와 상명대에 이어 서경대도 지난 3월 대학로에 부지를 매입했다. 더이상 개발될 곳이 없어 보이지만 기업들의 ‘재개발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한 극단 대표는 “나라에서 지원금 줘봤자 절반 이상을 대관료로 다 바쳐야 한다”며 “예술을 계량화하려는 지원정책보다는 차라리 나라에서 극장이나 몇군데 사서 열어주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삼 위원은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짓고 있는 복합문화센터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대학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위원은 “정극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면 대학로에 정극이 리턴한다는 상징성을 줄 수 있지만, 상업적인 것으로 간다면 대학로는 끝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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