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전히 서글픈 난장이여

2007.03.19 20:57

장다비 조회 수:8625 추천:121



신군부의 공연 정지 이후 27년 만에 무대에 선 연극 <난·쏘·공>…현재 시점으로 각색해 의미있지만 원작만큼의 울림 주는지는 의문

19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뒤 빨갱이 연극으로 몰려 공연 정지를 당한 뒤 27년 만에 무대에 선 연극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4월29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은 발칙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형편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1978년 조세희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서슬 퍼런 검열에 묶여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3시간 내내 작정하고 풀어놓는다.

“이게 어디 사람사는 꼴이야?”

연극은 70년대 경제개발에서 낙오된 도시 하층민의 고통와 좌절을 다룬 원작을 충실히 따라간다. 전형적 하층민을 대변하는 주인공 난장이 가족은 삶의 터전인 행복동에 손수 마련한 집이 개발 붐에 밀려 철거되면서 거리로 내몰린다. 키 117cm, 몸무게 32kg에 불과한 난장이 가장 김불이를 불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기껏해야 떠돌아다니며 수도를 고치거나 펌프를 놓는데, 이마저도 나이 먹고 병들어 여의치 않다. 난장이를 대신해 생계에 뛰어든 자식들도 공장 노동자로 혹사당한다. 난장이 스스로 “난 열심히 일했네”라고 위안하지만, 난장이 가족에게 현실은 감내하기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연극 <난쏘공>의 무대는 어둡고, 초라하다.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철재 구조물은 강제철거와 노동탄압, 단식투쟁에 내몰려 휘청이는 난장이 가족과 닮았다. 난장이는 수시로 벽돌공장 굴뚝 위에 앉아 “달이 더 높이 뜨는 걸 보고 가겠다”고 기대를 걸어보지만, 환하게 비치는 달빛도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지 않는다. 난장이가 달을 향해 쇠공을 쏘아올려도, 곧바로 땅에 떨어져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행복하게 살겠다”는 이들의 꿈과 희망은 현실에서 넘기 힘든 벽이다. 아니, 이들이 꿈과 희망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우린 씨종(노비)의 후손이야. 마음 편히 산 날 없고, 몸도 지쳤어. 이게 어디 사람사는 꼴이야?”라는 난장이 부인의 대사처럼 가난은 되물림되는 것이기에. 이런 평범한 진리를 애써 외면하는 난장이의 모습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하지만 연극이 원작만큼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연극은 대사 등 곳곳에 이 연극의 시간적 배경이 70년대와 지금 현재라는 두 시점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런데도 70년대 개발독재 당시 빈민·노동자들의 문제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례나 대사로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노사의 경제이익과 산업평화를 위한 협의장’ 장면은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나 노동자 탄압 같은 문제들, 거대자본과 신자유주의가 낳은 부작용이나 양극화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주제 부각 위한 군더더기 아쉬워

연출자 채윤일씨는 “브레히트의 ‘거리두기’(일명 소외효과)를 차용해 관객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30년 전 초연 때처럼 관객에게 공감과 교훈을 주려고 애쓴 흔적만 곳곳에 드러나 오히려 거부감을 준다. 은강방직 노동자들이 6박7일간의 단식농성을 풀면서 정리한 기록 50여 가지를 10여 분을 할애해 자막으로 처리하는 대목은 주제를 부각시키려 억지로 긁어모은 군더더기처럼 읽히기까지 한다.

이런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연극 <난쏘공>은 원작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누구나 한번 볼 만한 작품임은 틀림없다. 왜 <난쏘공>인가?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가 21세기 요즘 사람들에게도 분명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주권을 싼값에 부동산 업자에게 팔고 떠나는 난장이 가족의 모습은 부동산 광풍에 내몰려 고통받는 요즘 서민들과 겹친다. 자본이나 노동조합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갖는 불만도 마찬가지로 떠올리게 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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