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5월. 봉헤찌로에 지하 1층, 지상1층 규모의 건물을 임대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과 열린 공간은 물론 각종 소규모 문화행사장 등으로 활용되어 왔던 청소년 문화센터 ‘쿰’ (QUM) 이 지난 23일(토) 새 주소(R. Lubavich, 79번지)로 이전, 재 개관 됐다.
같은 길 지상 2층 규모의 장소에 약 2개월에 걸친 내부 공사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쿰’ 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북 카페’ 형식으로 꾸며졌다.
카페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각종 서적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고,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카페 중앙에는 소규모 무대와 안 쪽으로는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PC 들과 벽걸이 TV와 함께 작은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설도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신간 서적 판매도 가능하며, 카페, 주스 등 간단한 음료수와 컵라면 등도 실비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2층에는 각종 오락시설과 개인, 그룹별 공부방을 마련해 언제든지 교포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도 마련되어 있다.
현재 15여명의 학생들이 공부방으로 활용한다는 이 곳은 교포들을 위한 한국어. 포어 교실도 개강되어 수시로 신입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쿰’ 이란 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 ‘일어나라’ 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일년 평균 국내. 외 공연횟수가 3~40회에 이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쿰’ 의 대표적인 공연팀 ‘갓스 이미지’ (Gods Image)의 단원들 전용 연습실은 3층에 자리잡고 있다.
약 140여 m2 에 달하는 넒은 공간에는 탈의실을 비롯해 평소 ‘예전 연습실 바닥이 시멘트 바닥으로 이뤄져 노심초사 아이들의 안전사고에 늘 걱정해 왔다.’ 라는 박지웅 목사(46)는 목재 위에 별도로 스포츠장판을 깔아 단원들의 부상을 극소화 해 박 목사의 배려와 사랑이 흠뻑 배여있다.
이런 박 목사의 노력에 힘입어 40여명의 구성된 ‘갓스 이미지’ 공연 팀은 매년 2회(2, 8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신입단원을 선발하고 있는데 매번 참여 신청자 들이 늘어나는 등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8세부터~ 18세의 교포 청소년들로 구성된 ‘갓스 이미지’ 는 작년 한국, 아르헨티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올해 7월에는 뉴욕, 보스턴, LA 등 미국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 단원들과 스탭 등 42명으로 구성된 이번 미국순회 공연팀은 기간 동안 하버드 대학 등 명소를 방문해 현장실습 기회도 가질 계획이다.
올해 8월 부터는 문화센터 운영시간을 대폭 늘려 7시에서~ 10시까지 운영하게 되며 매주 1회씩 카페 무대에서는 재즈, 가요 등의 라이브 공연을 주최해 음악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과 ‘갓스 이미지’ 단원들의 연습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에어로빅 등의 각종 문화공간으로도 할애해 문화센터적인 구실도 해 나갈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
박 목사는 교포 청소년들의 탈선수위가 높아지는 우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과해 오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판단은 공간 제공에 앞서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고민상담을 해 줄 수 있는 서포터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라고 지적하고 “문화센터 운영방침에도 청소년 선도와 예방을 병행하자는 부분도 있지만 이들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 상태.” 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박 목사는 “청소년들의 변화를 기대하기에 앞서 부모들은 물론 교포 단체 리더들도 변화가 필요하다.” 라고 덧붙이고 오는 9월경 신호범 미국 워싱턴 주 상원의원을 초빙해 한인 대표 리더, 부모, 청소년 등 대상 그룹으로 나눠 세미나를 가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 목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아무쪼록 한인 2세들이 바른 정체성을 갖고 브라질 사회에 진출해 실력과 신앙을 겸비한 인재들로 양성되어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 있는 위치의 삶을 가지는 것이 큰 목적.” 이라는 바램과 함께 “비록 ‘크리스챤 문화센터 쿰’ 이라고 개명은 했지만 의미는 운영자의 입장으로서의 ‘크리스챤’ 의 생각으로 운영을 해 나간다는 것이 주 의미이다. 열린 공간으로서 많은 방문과 애용을 부탁한다.” 고 당부했다.
유년시절 선교사인 부친을 따라 약 5~6개국을 다닌 관계로 다국어 어휘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 박 목사는 평소 “이 담에 커서 대사가 될 꺼야.” 라는 큰 꿈을 가졌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의 대사’ 가 됐다며 아내 한유미(41)문화센터 원장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