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토) 오전10시 경. 자신의 집 앞에서 곽낙용씨가 검거되는 모습을 지켜 보던 피해자 이모씨(가명)는 지난 1년여 동안 자신과 아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그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는 듯 경찰차에 올라타는 곽 씨를 향해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라며 한 맺힌 푸념을 토로했다.
이 번 곽 씨가 검거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와 정보를 제공한 교포 이씨는 작년 6월 곽 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를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간거래상(벤데)업에 종사하던 시절 오랜 경력으로 인해 세무원들의 동향을 꽤 뚫을 정도로 베테랑(?)급 수준 이였다는 이씨는 우연치 않게 곽 씨의 아내 정모씨(가명)가 점포 앞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지금 세무원들의 조사가 심하니 다른 시간에 옮겨라.” 고 조언해 주었던 것이 결국 곽 씨 부부와의 첫 만남 이였다.
감사함을 전하려 곽 씨 부인의 요청으로 만난 이씨는 정모씨가 자신의 학교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급속도로 이들의 친분은 두터워갔다. 그로부터 곽 씨 부부는 봉헤찌로에 의류점포를 하게 되었고, 이씨도 나름대로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 중간도매상업을 그만두게 되어 오랫동안 서로의 안부도 모른 채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씨는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미국으로 보낸 후 막내와 부인과 함께 상 파울로 근교 소도시에 조그마한 농장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3월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에 큰 충격에 받은 나머지 모든 일을 그만두고 막내 아들과 함께 요양을 하던 중 우연히 곽 씨를 만났다.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던 중 곽 씨에게서 이혼을 했다는 소식과 현재 브라질 여성과 결혼해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며 그 동안 겪어온 고통과 자신의 근황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씨는 “나도 힘들지만 원한다면 우리 집에 와서 기거하면서 일거리를 찾아봐라.” 라며 자신의 집 아래층을 흔쾌히 내주었다.
그 이후 곽 씨는 자신의 아내라며 브라질 여성과 세 자매를 데려와 기거하기 시작했고, 이씨가 가끔 농장에 가는 날이면 만사를 마다하고 같이 동행해 농장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에 이씨는 조금씩 신임을 갖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이 지난 올해 2월 “도시생활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농장 근교에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싶다.” 라는 명목으로 사업자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오랜 불황으로 인해 농장을 내 놔야 할 형편에 할 수 없이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상 파울로로 돌아온 후 “좋은 사업이 있는데 같이 한번 해보자.” 라며 제의하는 그에게 “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자본도 없다.” 고 말했지만 “자본금이 필요 없는 장사” 라며 집요하게 이씨를 종용했다.
하지만 현재 이씨는 살고 있는 집세 조차 해결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럼 당신 아들을 나에게 맡겨라. 내가 최고의 사업가로 성장시켜 주겠다.” 고 제의했고, 평소 아들이 그를 잘 따르는 것 같다고 느낀 이씨는 “그럼 둘이서 직접 얘기를 해 봐라.” 라며 자리를 비켜 주었고, 아들 이씨도 자신의 아버지와의 친형제처럼 지낸다는 얘기에 아무 의심 없이 그의 제의에 따라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설득에 성공한 곽 씨는 다음날 이씨의 아들과 함께 “사업을 하려면 은행구좌를 개설해야 된다.” 라며 은행에 가서 아들의 명의로 개인구좌를 개설했고, 원단 등을 구입해야 된다는 이유로 공장허가를 내야 된다며 브라질인 계리사를 이씨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의 요구대로 허가에 필요한 비용과 서류를 준비해 계리사에게 모두 넘겨 주었지만 사고가 터진 지금도 공장허가는 받지 못한 상태.
그가 제의한 사업은 일단 의류샘플을 제작 해 대형 마켓을 상대로 주문서를 받아 주문생산 하자는 것.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주문서는 커녕 공장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자, 불만스러움을 토로하는 아들 이씨에게 “주문서는 받아놨지만 공장허가가 나오지 않아 납품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라고 둘러대기 시작했고, 사소한 일은 물론 은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화를 내는 등 처음보다 태도가 급변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씨는 결국 “사업을 그만 두겠다.” 라고 마지막 통보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태연스럽게 “그만두자. 내일 아침에 짐을 찾으러 오겠다.” 는 말을 남기고 부인과 함께 이씨 집을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후 아들에게서 자신의 명의로 된 수표에 사인을 해놨다는 사실과 가끔 환전상으로 보이는 한인이 집으로 그를 찾으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주위 이웃들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던 중 모두들 “경찰에 신고하라” 라는 말에 아들 이씨와 함께 제2관할 경찰서를 찾아 그를 고발조치 하기에 이르렀다.
신고를 받은 경찰들은 다음날 짐을 가지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는 제보자의 말을 듣고 경찰은 22일(토) 이른 새벽부터 이씨 집 앞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갔고 오전 10시경. 약속대로 공장 직원들과 함께 이씨 집에 나타난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제보자들의 증언과는 달리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그에게서 별다른 수상한 점을 찾지 못한 경찰들은 일단 경찰서로 연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작년 6월 이미 사기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그가 소지하고 있던 가방 속과 지갑에서는 갖가지 타인명의의 신분증과 신용카드, 수표 등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 그 중 이씨의 아들 명의로 된 신용카드, 수표는 물론 검거 당시 그가 타고 있던 수입 자동차(사진) 마저 모두 이씨의 아들 명의로 되어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밖에도 다른 피해자로 보이는 한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는 물론 심지어 브라질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더욱 수사진들을 놀라게 한 것은 자신의 도피생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시민권(Paulo Evangelista Kwak), CIC 위조 사본은 물론 위조 경찰신분증까지 소지하고 있었던 것.
조사결과 곽 씨는 몇 달 전 이씨 몰래 아들을 설득 해 현재 산타나 지역의 아파트를 임대해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수표와 신용카드를 이용해 또 다른 수입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했다는 것과 가택수사가 벌어진 22일 당일에는 상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고급 벽걸이 TV가 배달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동안 사기행각을 벌여오며 호화생활을 누려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곽 씨를 만난 것에 뒤늦은 후회를 하던 이씨는 “잘해준 죄 밖에 없다. 이제 와서 후회해야 소용없겠지만 더 큰 걱정은 아들 명의가 마수에 의해 불량 신용자로 분류되어 앞날이 깜깜.” 하다며 “이렇게 결국 나의 등에 비수를 꼽다니..” 라는 하소연과 울분이 섞인 어조와 함께 말끝을 흐렸고 경찰서 구치 장에서 만난 곽 씨는 “할 말이 없느냐” 라는 기자의 물음에 단호한 목소리로 “할 말이 없다.” 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구치 장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몇 년간에 걸쳐 곽 씨의 도피생활과 사기행각은 이로서 마감을 하고 이제는 법의 심판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피해자로 알려진 최모씨, 양모씨, 김모씨 등 외에도 많은 한인들의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제2경찰서 닐지 서장은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 가택수색으로 압류한 계약서로 보이는 서류가 세 가방 분에 이른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 수는 20~22명 정도이며, 앞으로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과 증언을 토대로 계속 수사가 이뤄질 예정.” 이라고 밝히고 “요즘 한인들을 상대로 발생하고 있는 지역범죄 집단의 연쇄적인 절도, 강도사건과와도 연루가 되어 있는지도 추가로 수사 할 것.” 이라며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